명지지맥 1 (무리울-국수당)

일      자 : 2009. 6. 13.(토)

동  행 자 : 단독

날      씨 : 맑음

소요시간 : 09:23, 21.6㎞ (지맥 06:30, 13.2㎞)


1

  이번에는 명지지맥이다. 한북정맥을 종주하면서 뾰족하게 솟은 귀목봉과 그 뒤로 우람하게 뻗어있는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꼭 한번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와 청평까지 이어지는 이 산줄기를 ‘연인지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연인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정통성이 없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을 따서 지맥의 이름을 붙인다면, ‘명지3봉'이 최고봉이므로 역시 ’명지지맥‘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일동터미널에 도착한다. 이어 택시를 타고 ‘무리울’ 입구에 도착한다(택시비 6,000원). ‘장자울’, ‘가재울’과 같이 ‘○○울’은 ‘○○마을’이나 ‘○○골’이라는 우리말로 생각된다. 어쨌거나 참 예쁜 이름이다. 한편 朝鮮地誌資料 永平郡 一東面 편에는 한자로 '武夷洞'이라고 표기하고, '무리울'이라는 음을 달아 놓았다.  


2

  커다란 ‘강씨봉’ 안내도 앞에서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07:35). 무리울 표지석이 있는 곳부터 오뚜기고개까지는 군용도로를 따라간다. 군데군데 심하게 훼손되어 일반 차량은 통행이 불가능하나,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off-road용으로 개조한 사륜구동차들이 이 도로를 통과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 흔적인지, 아직도 선명한 타이어 자국이 남이 있다.


무리울 입구. 오른 쪽의 비포장도로를 따라간다.

 도로 양쪽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감상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얼마나 올랐을까, 왼쪽 아래로 ‘무리울’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름만큼이나 예쁜 모습이다.


무리울마을 전경

  거의 한 시간을 올라가자, 도로 오른쪽에 건물의 흔적이 있다. 군용초소였던 모양이다. GPS를 보니, 이곳에서 오뚜기고개까지는 지척이다. 그러나 길은 왼쪽으로 크게 한구비를 돌아 올라간다.


폐 초소

  드디어 ‘오뚜기嶺’ 비석이 세워져 있는 오뚜기고개에 도착한다(08:54). 한북정맥을 종주할 때 만났던 반가운 비석이다. 비석 뒤를 보니, 1983. 6. 25. 세웠다고 되어 있다. 1983년이라...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반세기가 지났다.


드디어 오뚜기고개 도착

  이제부터는 방화선을 따라 한북정맥길을 간다. 그늘이 없는 방화선을 가는 것은 고역이다.

  조그만 봉우리를 두어 개 넘어, 마침내 한북정맥과 명지지맥의 분기점인 890봉에 도착한다(09:31). 왼쪽에 오늘 올라갈 귀목봉이 뾰족하게 솟아있다.


분기점 직전에서 본 귀목봉(왼쪽 가장 높은 봉우리)와 연인산 능선

명지지맥  분기점

  이제부터는 한북정맥과 이별하고, 명지지맥을 걷는다. 한북정맥과는 달리 길이 좁아지고, 나무가 빼곡하다. 그래도 그늘을 만들어주니 고마울 뿐이다. 빽빽한 나무 때문에 조망은 전혀 없다. 경사가 급한 바위길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곳곳에 설치된 계단

  귀목봉 직전의 바위에 이르러 비로소 북쪽으로 시야갸 트인다. 맑은 날씨 덕분에 광덕산부터 이어지는 한북정맥이 뚜렷하게 보인다.


광덕산에서 이어지는 한북정맥

  정상표지석이 있는 귀목봉에 도착한다(10:15). 귀목봉에서는 남서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한북정맥 길매봉과 운악산이 잘 보인다. 한북정맥을 할 때의 추억이 머리를 스쳐간다. 貴木峰은 貴木마을 뒤에 있어 붙은 이름으로 생각된다.


귀목봉

뾰족한 길매봉과 그 뒤의 운악산 능선

  귀목봉부터 귀목고개까지는 거의 고도 300m를 내려간다. 어떻게 벌어놓은 고도인데... 아깝기 짝이 없다.

  귀목봉 쪽으로 마주오던 두 팀을 만났다. 이들은 귀목마을에서 귀목고개를 거쳐 오는 길이라고 한다.

  드디어 귀목고개에 도착한다(10:50). 이 고개는 상판리와 적목리를 잇는 고개이다. ‘적목’은 지형도의 도엽명으로 귀에 익은 이름이다.


귀목고개

  이제부터는 그 동안 까먹은 고도를 다시 벌어야 한다. 까먹은 것은 300m 정도이나, 벌어야 할 것은 450m이다.

  귀목봉보다 계단이 설치된 구간이 훨씬 많다. 큰 바위가 갈라져 문을 이룬 곳을 지난다. 길이 뚜렷하고, 표지판도 잘 설치되어 있다. 힘들면 야생화 사진을 찍으면서, 가쁜 숨을 가다듬는다.


바위 문

  명지3봉 직전에는 바위 봉우리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가 없었더라면 바위 봉우리를 힘들게 오르내려야 했을 것이다.

  ‘연인산’과 ‘명지산’의 분기점인 명지3봉에 도착한다(12:17-24). 이 봉우리는 해발 1199m로서, 명지산의 제1봉(1267m), 제2봉(1250m)에 이어 세 번째로 높고, 명지지맥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다. 바위 뒤의 그늘에 가서 김밥 한 줄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다.


명지3봉

  이곳부터는 다시 방화선을 따라간다. 아재비고개까지는 다시 고도 280m를 내려간다.

  명지3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정말 야생화 천국이다. 산에서 새로운 꽃을 볼 때마다, 야생화 공부가 아직 멀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점점 다가오는 연인산을 보면서 걷는다.


멀리 보이는 연인산

  경사가 점점 완만해지더니, 이동통신중계탑이 나오고 그 뒤로 표지판이 있다. '귀목'과 '백둔리'를 잇는 아재비고개이다(13:18). 옛 지형도에는 兒才峴(アチャ-ゴゲ)라고 표기되어 있다. 굶주린 산모가 갓난아기를 잡아먹었다는 끔찍하고도 슬픈 전설이 있는 곳이다. 어린 아기의 혼을 위로하듯이 노란 원추리꽃이 사방에 피어 있다.


아재비고개

  이제부터는 다시 오르막이다. 야생화를 감상하면서 경사길을 올라간다. 바위 지대를 통과한다. 산꾼들 사이에서는 '비박바위'라고 알려진 곳이다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 같은 1010봉에 올라서자, 비로소 연인산 정상이 잘 보이기 시작한다.


비박바위

  커다란 표지석이 있는 연인산 정상에 도착한다(14:40-47). 연인산 정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명지산 정상이 보인다.


연인산 정상

연인산 정상에서의 조망 - 북쪽의 명지산

연인산 정상에서의 조망 - 남쪽의 명지지맥

  옛 지형도에도 이 봉우리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으나, '우목봉' 또는 '월출산'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우목봉'이라는 이름은 '귀목봉'과 마찬가지로, '목'자 돌림의 마을인 '우목'이라는 마을 뒤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 아닐까한다.

  그러나 1999년 가평군 地名위원회에서 '연인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가평군청 홈페이지를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연인산. 연인산 서남쪽의 906봉은 우정봉, 전패고개는 우정고개, 동남쪽 829봉은 장수봉으로 고쳤다. 또한 연인산에서 뻗은 각 능선에 우정, 연인, 장수, 청풍의 이름을 붙였다.>


  지명은 역사가 깃들어 있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지명을 함부로 바꾸는 것은 문화재 말살이다. 문화재 훼손행위를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려놓는 것을 보니 할 말이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전패'라는 지명이다. 어느 산꾼의 산행기에는 '6.25때 이 지역에서 全敗를 해서 전패봉, 전패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되어 있다. 가평군지명위원회가 '전패봉'과 '전패고개'를 '우정봉'과 '우정고개'로 변경한 이유가 '혐오지명'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평군 지명위원회도 그 산꾼과 마찬가지로, '전패'를 '全敗'로 해석한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 어느 넋 빠진 사람들이 자신들이 진 것을 기념해서, 이를 지명으로 삼을까?

  이 시점에서 1918년판 지형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 지형도에는 현재의 '연인산'이나 '우정봉'은 고도표시만 있는 무명봉이고, '우정고개'는 '菊垂堂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라나 '906봉' 동쪽에 檜貝里라고 표기하고, 'チョンペ-ニ-'라고 부기되어 있다. 6.25.사변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지역의 이름은 '전패'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패'는 무슨 뜻일까? 옥편에서 檜를 찾아보면 '노송나무 회'로 되어 있다. 노송나무는 편백나무라고도 하며, 일본 사람들이 목욕탕 욕조를 만들 때 애용하는 나무이다. 그러나 오래된 옥편을 찾아보면 '전나무 회'로 되어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檜는 전나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전패'는 '전나무가 무성한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1918년 지형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전패'라는 이름을 기재하면서, 그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굳이 檜라는 한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사람들도 지켜주려고 했던 우리의 지명을, 혐오스럽다고 하고 함부로 바꾸는 이 작태를 무식하다고 해야 하나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월간 산 1994년 6월호 별책부록에는, 우목봉, 전패봉, 전패고개 등 이름이 훼손되기 전의 지명이 그대로 기재되어 있다.

 
씁씁한 기분을 갖고 산행을 계속한다. '연인산'부터 다음 봉우리인 1048봉까지는 큰 나무가 없고 철쭉나무만 무성하다. 분꽃과 원추리도 많이 피어 있다. 오랜 만에 보는 참붓꽃이다. 요즘은 키가 작은 붓꽃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이름이 멋대로 바뀐 연인산 일대의 안내도(가평군청 홈페이지에서 옮겨옴)

  넓은 헬기장인 1048봉에 이른다(15:02). 이곳부터는 약간의 오르막기 있기는 하나, 거의 내리막이다.

  긴급연락 표지판에 '우정봉'이라고 적혀있는 906봉에 이른다(15:32). 이 봉우리의 동쪽 아래에 있는 마을이 '전패'이다. 전나무가 많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소나무가 빼빽해서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6.25때 격전지였고, 그 후 혼란기를 겪으면서 전나무가 지금까지 살아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우정봉'으로 바뀐 '전패봉'

전패봉에서 본 제1구간의 나머지 부분

전패마을 쪽은 소나무가 무성해서 보이지 않는다.

  두 개의 헬기장을 지나자, 비포장 임도와 만난다. 이른바 '우정고개'이다(16:23). 조금 전 헬기장에서 들것에 누워있는 산꾼을 보았는데, 그 분을 구조하기 위해서 타고 온 지프차가 세워져 있다.


역시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우정고개'로 이름이 바뀐 '전패고개'

3

  지프차는 동쪽의 연인산 관리사무소 쪽에서 온 것이었다. 서쪽의 국수당으로 내려가는 길은 도저히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길이었다.

  등산로 반, 물길 반인 길을 따라 내려간다. 시원한 계곡물에 세수를 한다. 도립공원 경계표지와 차량통행 차단기를 통과한다.


이 차단기를 지나 5분 정도 내려가면 마일리이다.

  이어 벌을 키우는 집을 지나자, 커다란 '연인산' 안내도가 있는 주차장에 이르러 오늘 산행을 마친다(16:58).

  연인산 안내도에는 우정봉을 한자로 友精峰으로 적고 있다. 友情도 아닌 友精은 또 무슨 뜻인지. 아무튼 마음에 안든다.

  마일리에서 현리까지 가는 버스는 18:30에 있으나,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길다. 택시를 불러 현리까지 갔다(031-585-0473, 9600원).

  현리에서는 청량리까지 가는 1330-4번 버스가 약 30분 간격으로 있다.




2009-06-13.gdb


by basset98 | 2009/06/13 23:53 | 지맥종주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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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박성태 at 2009/06/17 06:34
산과 고개등 자연지명의 신설·변경은 시·군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도와 중앙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가 고시를 해야하는데 가평군은 이렇게 생뚱맞게 이름을 바꾸고, 상급지명위원회를 무시하고 최종 결정된 공식지명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고, 이 산을 찾는 사람 거의가 그렇게 사용하고 있으니 정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연인산 관련부분을 '한국의산하 우리산바로알기'에도 옮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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